
1화가 끝나는 순간, 이미 화면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은중과 상연'은 10대부터 40대까지 두 여자의 삶을 15부작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선망과 원망이라는 종이 한 장 차이의 감정이 어떻게 한 관계를 끝까지 붙들고 흔드는지 지켜보며 나의 삶을 대입해 볼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목차
1. 두 여자의 관계, 이해와 오해가 쌓인 30년
2. 선망과 원망, 그 작은 차이가 만든 균열
3. 김고은, 박지현 연기가 시상식을 만든 이유
4. 자주 묻는 질문
5. 결론
두 여자의 관계, 이해와 오해가 쌓인 30년
드라마는 40대의 현재에서 출발합니다. 조력 사망(assisted dying)을 선택한 상연이 10년을 끊고 지냈던 은중에게 스위스 동행을 부탁하는 장면부터 시작하죠. 여기서 '조력 사망'이란 불치병 등으로 더 이상 삶을 이어가기 힘든 환자가 의료적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절차를 의미합니다. 스위스, 벨기에 등 일부 국가에서 법적으로 허용된 이 제도는 국내에서는 아직 논의 단계에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작품은 이 장면을 '결말'로 미리 꺼내놓고, 곧바로 두 사람의 10대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서사의 비선형 구조(non-linear narrative), 즉 시간 순서를 뒤섞어 과거와 현재를 교차 배치하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시청자는 처음부터 "이 두 사람은 도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라는 질문을 품고 화면을 보게 됩니다.
선망과 원망, 그 작은 차이가 만든 균열
이 드라마에서 핵심은 감정의 이중성입니다. 선망와 원망은 한 글자 차이지만, 한 사람을 향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부러우면서도 미운 것'이라는 말,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정은 특히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 복잡하게 얽힙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은중이기도 했고 상연이기도 했습니다. 배려한다고 한 말이 상대방의 자존심을 긁어버린 경험, 혹은 반대로 누군가의 배려가 오히려 제 열등감을 건드렸던 순간들이 화면 위로 하나하나 겹쳐 보였습니다. 그래서 은중을 보고 답답해할 수가 없었고, 상연을 보고 마냥 밉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송혜진 작가의 대본이 빛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오해로 뒤덮이고 그런 작은 오해들이 쌓여 큰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 속에서 시청자는 인물에 몰입됩니다.
조영민 감독의 연출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습니다. 자극적이 사건을 앞세우는 대신, 잔잔한 연출로 감정선을 따라갑니다. 그 잔잔한 공백에 나를 빗대어 인물의 감정을 이해해보며 공백을 함께 채워갈 수 있습니다.
김고은·박지현, 연기가 시상식을 만든 이유
이 드라마가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김고은이 대상을 받았으며, 박지현이 에미상(Emmy Awards) 후보에 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에미상이란 미국의 텔레비전 예술과학아카데미(Television Academy)가 수여하는 TV·스트리밍 부문 최고 권위의 상으로, 한국 배우가 연기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성과입니다(출처: Television Academy).
김고은이 연기한 은중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는 "우리"와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상연이보다 감정의 파고가 높지 않고 잔잔하되,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게 보여줘야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연 역할보다 더 어려운 연기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지현이 표현한 상연은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깊은 결핍을 안고 사는 인물입니다. 박지현은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을 헤어스타일, 의상으로 보여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눈빛과 말투로 연기 해냈습니다. 특히 40대 아픈 환자를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얼굴의 붓기까지 연기한다는 평이 있을정도로 아픈 환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냈습니다.
은중이 중심을 붙잡고 상연이 흘러가는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chemistry)는, 쉽게 말해 두 사람이 서로의 연기를 통해 각자의 인물을 더 완성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의미합니다. 이 균형이 15회 내내 유지됐다는 점이 이 드라마가 긴 호흡에서도 몰입을 잃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은중과 상연' 몇 화까지 봐야 재미있나요?
A. 저는 1화 엔딩에서 이미 다음 화를 눌렀습니다. 조력 사망을 예고하고 10대 시절로 돌아가는 구성이 바로 강한 궁금증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초반부는 차분한 전개라서 "자극적인 걸 원한다"는 분들께는 살짝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3화 정도까지 보시면 두 인물의 감정선에 충분히 진입하게 됩니다.
Q. 조력 사망 소재라서 무겁지 않나요?
A. 무겁지만 무기력하지는 않습니다. "죽음을 다룬 드라마는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드라마에서 죽음이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고 느꼈습니다.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가 서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보고 나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생각나는 드라마입니다.
Q. 15부작이 길게 느껴지지 않나요?
A. 솔직히 말하면 중반부에서 잠깐 속도가 느려진다는 느낌이 드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숨에 몰아볼 수 있을 만큼 흡입력이 있었고, 중반의 느린 호흡이 후반부 감정의 무게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필요한 속도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부작이라는 분량이 이 이야기에는 맞는 그릇이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은중과 상연'은 자극 없이도 끝까지 붙드는 드라마입니다. 공개 전, '은중과 상연'이라는 두 여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많은 추측이 있었는데, 결국 이 드라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선망과 원망, 이해와 오해가 30년을 쌓아올린 두 여자의 서사를 통해, 제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제 주변의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작품에 마땅히 좋은 결과가 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를 보며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 사람이 혹시 당신의 은중이거나 상연이지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드라마입니다.
참고: https://www.tvdaily.co.kr/read.php3?aid=17577216001763105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