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한 작가 교수가 천재 소년의 글에 집착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먼저 프랑스 영화 '인 더 하우스'를 통해 이 이야기의 원형을 접했습니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두 나라의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직접 겪어보니 비교하는 재미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목차
1. 원작 비교 - 프랑스판과 한국판, 얼마나 다른가
2. 서스펜스 - 미드폼이라 더 날카롭게 파고든다.
3. 최민식과 최현욱 - 욕망을 연기한다는 것
4. 욕망 - 이 드라마가 끝난 뒤 제게 남긴 질문
5. 자주 묻는 질문
6. 결론
원작 비교 - 프랑스판과 한국판, 얼마나 다른가
저는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맨 끝줄 소년(El chico de la última fila)」을 원작으로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여기서 희곡(戱曲)이란 무대 공연을 위해 쓰인 대본 형식의 문학 장르를 말하는데, 이 작품은 유럽 연극계에서 꾸준히 공연될 만큼 이미 충분히 검증된 텍스트입니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2012년에 이를 영화화한 것이 '인 더 하우스(Dans la maison)'이고, 국내에서는 김규태 감독이 OTT 드라마로 새롭게 각색했습니다.
제가 인 더 하우스를 먼저 본 탓에 맨 끝줄 소년을 볼 때는 처음부터 비교의 눈이 따라붙었습니다. 프랑스 영화는 관음증적 시선, 즉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욕망을 꽤 자극적으로 밀어붙이는 편입니다. 한국인이 보기에 '엥?'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들이 분명 있거든요. 반면 한국 드라마판은 그 수위를 낮추고 한국 정서에 맞게 감정선을 조율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각색(脚色)이란 원작의 줄기를 살리되 대상 문화권에 맞게 이야기를 변형하는 작업인데, 이번 한국판은 자극보다 심리적 긴장감에 무게를 실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두 작품을 순서대로 보고 나서 "같은 이야기인데 이렇게까지 결이 다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 원작: 후안 마요르가 희곡 「맨 끝줄 소년」 — 유럽 연극계 스테디셀러
- 프랑스판 '인 더 하우스': 관음증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묘사, 자극 수위 높음
- 한국판 '맨 끝줄 소년': 심리 서스펜스 중심, 정서적 수위 조율하여 국내 정서에 맞게 재구성
서스펜스 - 미드폼이라 더 날카롭게 조여든다
이 드라마는 미드폼(Mid-form) 형식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미드폼이란 회당 러닝타임이 일반 드라마(60~70분)보다 짧고, 전체 편수도 적게 설계된 압축형 콘텐츠를 뜻합니다. 이 형식이 서스펜스 장르와 만났을 때 효과가 배로 증폭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야기가 복잡해질 만하면 반전이 터지고, 그 반전이 채 정리되기 전에 다음 화가 시작됩니다. 숨 돌릴 틈 없이 다음 화로 넘어가게 되는 구조랄까요. 서스펜스(Suspense)란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긴장과 불안감이 지속되는 감각인데, 이 드라마는 그 긴장의 끈을 마지막 화까지 절대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렵겠다' 싶어서 중도하차를 걱정했는데, 오히려 형식 자체가 그걸 막아주더라고요.
허문오 교수가 이강의 글에 빠져들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지는 과정, 그 심리적 붕괴가 회를 거듭할수록 짙어집니다. 이야기가 복잡한 건 사실입니다. 생각을 해야 하는 작품이에요. 그런데 형식이 그 복잡함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영리하게 짜여 있어서, 어렵다는 느낌보다 계속 따라가고 싶다는 느낌이 앞섰습니다. 미드폼과 서스펜스의 조합, 꽤 잘 만든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민식과 최현욱 - 욕망을 연기한다는 것
제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붙잡고 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솔직히 캐스팅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김규태 감독과 좋아하는 최민식 배우. 이 조합이라면 믿고 보는 거라 사실 내용과 무관하게 첫 화를 틀었습니다.
최민식이 연기하는 허문오는 재능을 놓쳐버린 사람의 공허함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눈빛 하나, 말의 속도 하나가 전부 계산된 것처럼 보이는데도 전혀 작위적이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연기는 텍스트를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밀리지 않는 최현욱의 이강. 냉정하고 관찰자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어딘가 위태로운 소년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습니다.
카리스마(Charisma)란 일반적으로 타인을 압도하는 매력이나 존재감을 뜻하는데, 두 배우는 장면을 공유할 때마다 서로의 카리스마를 끌어올리는 시너지를 냈습니다. 한쪽이 강해질수록 상대방도 거기에 맞서 더 날카로워지는 식이었어요. 제가 직접 봐보니 이 팽팽함이 드라마 전체의 긴장을 유지시키는 실질적인 동력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전반적으로 탄탄해서 주인공 두 사람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욕망 - 이 드라마가 끝난 뒤 제게 남긴 질문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는 작품이 있습니다. 맨 끝줄 소년이 그랬습니다. 허문오라는 인물이 이강의 글에 집착하고, 그 집착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계속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왜 멈추지 못했을까.'
욕망이라는 게 처음엔 합리적인 얼굴을 하고 다가옵니다. 허문오에게는 '이 재능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고, 그 명분이 집착을 감추는 포장지가 됐죠. 이런 심리를 합리화(Rationalization)라고 하는데,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방어 기제를 뜻합니다. 드라마 내내 허문오가 구사하는 방식이 바로 이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인물을 볼 때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떤 욕망 앞에서 합리화를 시작한다면 저와 저 인물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그걸 절제하지 못할 때 한 인간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드라마가 던진 질문이 제 일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참고로, 심리학적으로 창작 욕망과 소유 욕망이 뒤섞이는 현상은 다수의 연구에서도 다루어진 주제입니다. 인간 행동의 근저에 있는 욕망 구조에 관심이 있다면 미국심리학회(APA)의 관련 자료를 살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자주 묻는 질문
Q. 맨 끝줄 소년, 원작 희곡이나 프랑스 영화를 먼저 봐야 더 재미있나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프랑스 영화 '인 더 하우스'를 먼저 봤는데,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판 드라마 자체만으로도 이야기가 충분히 완결되어 있습니다. 원작이나 영화를 모른 채 봐도 몰입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Q. 내용이 어렵다고 하던데 중간에 포기하게 되지 않나요?
A. 제가 직접 봐보니 생각보다 중도하차 걱정은 없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분명 복잡하고 생각을 요구하지만, 미드폼 형식으로 편수가 짧고 회마다 반전이 배치되어 있어서 '다음에 뭐가 나오지?' 하는 궁금증이 계속 발동됩니다. 어렵다는 느낌이 오기 전에 다음 화가 시작되는 구조입니다.
Q. 최민식 말고 다른 배우들 연기는 어떤가요?
A. 최현욱 배우가 이강 역할로 최민식과 대등하게 맞서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선배 배우와의 맞대결에서 기가 죽지 않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꽤 인상 깊었습니다. 조연진도 전반적으로 탄탄해서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받쳐졌다고 느꼈습니다.
결론
맨 끝줄 소년은 쉬운 드라마가 아닙니다. 제가 보면서 느낀 건, 이 작품이 쉬우려는 의도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분명히 있습니다. 최민식과 최현욱의 연기, 김규태 감독의 연출, 그리고 미드폼 형식이 만들어내는 속도감. 이 세 가지가 맞물려서 보는 내내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랑스 영화 '인 더 하우스'를 먼저 접한 덕분에 각색 방식을 비교하는 재미가 컸는데, 관심 있으신 분은 두 작품을 순서대로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나는 욕망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면, 그 드라마는 제 기준에서 충분히 잘 만든 작품입니다. 맨 끝줄 소년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참고: https://m.entertain.naver.com/contents/ott/37448541
p.s 문예창작과 출신으로서 하나 걸리는 것.
과제는 글씨체 양식을 지켜서 써줬으면 좋겠어 강아.